“임신은 행복해야 하는데 왜 나만 이러지” 하는 생각이 가장 큰 짐이 되시는 분이 많아요. 이 글은 그 짐을 조금 덜어드리려고 준비했어요. 산전 우울증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흔한 임신 증상과 어떻게 구분하는지, 어디서부터 도움을 받으실 수 있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드릴게요. 무엇보다 부모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산전 우울증이란 어떤 상태인가요

산전 우울증(antenatal depression)은 임신 기간 동안 나타나는 주요 우울 장애예요. 산후 우울증만큼 흔한데도 사회적으로는 훨씬 덜 알려져 있어서, 많은 임신부 분들이 “이 정도는 다 그런 거겠지” 하고 혼자 견디시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 가정의 일상 정물
임신 중 겪는 우울감은 의학적 상태예요.

연구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국과 해외 자료를 종합하면 임신부의 약 10–20% 정도가 임신 중 어느 시점에 우울 증상을 경험하시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임신 전 기간에 걸쳐 나타날 수 있고, 특히 임신 후기(28주 이후)에 더 흔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신체적 부담이 커지고 출산이 다가오면서 불안과 우울이 함께 깊어지는 시기예요.

산전 우울증은 의지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 변화·수면 박탈·임신 스트레스가 뇌 화학 작용에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의학적 상태예요. 당뇨나 빈혈처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봐주시면 돼요. 부모님이 약하거나 모자라서 그런 게 절대 아니에요.

산전 우울증을 알아두셔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치료받지 않고 지나가면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50% 이상으로 높아진다는 점이에요. 임신 중에 미리 발견해서 도움을 받으시면, 산후 회복 시기도 훨씬 안정적으로 보내실 수 있어요.

누가 더 위험한가요 — 위험 요인 살펴보기

산전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요인이 있을 때 발생 가능성이 더 높아져요. 해당 항목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우울증이 오는 건 아니지만, 미리 알고 계시면 자신을 돌보는 데 도움이 돼요.

영역위험 요인
개인 병력우울증·불안 장애·산후 우울증 과거력, 양극성 장애 가족력
임신 관련계획되지 않은 임신, 임신 합병증(임신성 당뇨·전자간증 등), 다태 임신, 반복된 임신 손실 경험
사회·관계파트너·가족의 지지 부족, 가정 폭력, 사회적 고립, 미혼·청소년 임신
경제·환경재정적 어려움, 직장 스트레스, 주거 불안정
신체만성 통증, 수면 장애, 갑상선 질환, 영양 결핍(특히 철·비타민 D)

특히 우울증·불안 장애를 이전에 경험하신 분이라면 임신 중 재발 위험이 일반 인구보다 2–3배 높다는 보고가 있어요. 임신 전부터 정신건강 진료를 받고 계셨다면, 임신 계획 단계에서 미리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협진으로 약물 조정과 모니터링 계획을 세워두시면 훨씬 안전해요.

임신 손실 경험도 중요한 위험 요인이에요. 유산·사산·계류유산을 겪고 다시 임신하신 분은 이번 임신 내내 불안과 우울이 깊을 수 있어요. 이 경우는 임신 손실 후 임신 가이드에서 따로 풀어드린 내용도 함께 보시면 도움이 돼요.

증상 — DSM-5 기준으로 살펴보기

산전 우울증은 정신건강의학 진단 기준(DSM-5)에 따라 주요 우울 삽화로 진단돼요. 다음 9가지 증상 중 5개 이상이 2주 이상 거의 매일 지속되고, 그중 적어도 1가지가 “우울 기분” 또는 “흥미·즐거움 상실”일 때 진단을 고려해요.

증상 영역구체적 모습
우울 기분거의 매일, 하루의 대부분 슬프거나 공허하거나 무망감
흥미·즐거움 상실평소 좋아하던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함
식욕·체중 변화의도하지 않은 식욕 감소·증가 또는 체중 변화
수면 변화불면 또는 과다 수면 (임신성 불면과 구분 필요)
정신운동 변화평소보다 말·행동이 눈에 띄게 느려지거나 초조해 안절부절
피로·활력 저하거의 매일 피로감 또는 활력 상실
무가치감·죄책감”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같은 과도한 자책
집중력·결정력 저하평소 잘하던 결정이 어렵고, 책·드라마 따라가기도 힘듦
죽음·자해 사고반복적인 죽음에 대한 생각, 자해·자살 사고

증상이 5개에 못 미친다고 해서 도움받지 않으셔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1–2개 증상만 있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진료를 받아보시는 게 훨씬 안전해요. DSM-5 기준은 진단을 위한 도구일 뿐, 도움받을 자격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에요.

특히 자해·자살 사고는 단 한 번이라도 떠올랐다면 즉시 도움을 요청하셔야 하는 신호예요. 이 부분은 글 뒷부분에서 위기 대응 방법으로 따로 정리해드릴게요.

임신 증상과 우울 증상 — 헷갈리는 부분 풀어드리기

산전 우울증의 진단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임신 자체로도 피로·수면 변화·식욕 변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이게 임신 때문인가 우울증인가” 헷갈리실 수밖에 없어요. 신체 증상보다 정서·인지 변화를 중심으로 보시면 구분이 한결 쉬워져요.

증상임신 자체로 흔함우울증을 의심하는 신호
피로감1분기·3분기 흔함, 휴식 후 회복잠을 자도 회복되지 않는 깊은 무기력
수면 변화빈뇨·태동·불편한 자세로 자주 깸잠들고 싶어도 머리가 멈추지 않음 또는 하루 종일 자도 졸림
식욕 변화입덧·특정 음식 거부·갑작스런 식욕먹는 행위 자체에 흥미가 사라지거나 폭식으로 위안받음
집중력 저하”임신 뇌” — 가벼운 건망증, 일상 기능은 유지책 한 페이지 못 읽음, 회사 일이 손에 안 잡힘
기분 변화호르몬으로 잠깐씩 눈물·짜증, 곧 회복2주 이상 지속되는 무망감·공허함, 회복 시점이 없음
흥미 상실특정 음식·운동 일시적 흥미 감소평소 좋아하던 모든 일이 의미 없게 느껴짐
자책가벼운 “더 잘 챙겨야 하는데” 마음”내가 엄마 될 자격이 없다”, “아기에게 미안하다”는 반복 생각

핵심은 두 가지예요. 첫째, 임신 증상은 보통 휴식·시간으로 호전되지만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는 점. 둘째, 임신 증상은 일상 기능을 약간 불편하게 할 뿐이지만, 우울증은 일·관계·자기 돌봄에 분명한 지장을 준다는 점이에요. 이 두 가지 기준으로 보시면 “내 상태가 어디쯤인가” 가늠하시기가 수월해져요.

EPDS 자가 체크 — 지금 내 상태 확인하기

EPDS(Edinburgh Postnatal Depression Scale)는 원래 산후 우울증 스크리닝 도구로 개발됐지만, 산전 우울증에도 폭넓게 사용되는 검증된 자가 평가 도구예요. 한국어로도 번역·타당화되어 있어서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에서 흔히 활용해요.

총 10문항이고, 지난 7일 동안의 기분을 0–3점으로 답하시는 방식이에요. 합산 점수에 따라 다음과 같이 해석해요.

점수해석권장 행동
0–8점우울 증상 가능성 낮음평소처럼 자기 돌봄 유지, 변화 있으면 재검사
9–12점경도 우울 증상 가능성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의논, 2주 후 재검사
13점 이상중등도 이상 우울 가능성정신건강의학과 진료 적극 권장
10번 문항 양성 (자해 사고)점수 무관 즉시 도움 필요1577-0199 또는 1393, 응급 진료

EPDS 검사지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복지센터 누리집, 한국임상심리학회, 일부 산부인과 누리집에서 무료로 받으실 수 있어요. 한 번 해보시고 9점 이상이 나오신다면 산부인과 정기 검진에서 결과지를 보여드리며 의논해주시면 돼요. 자가 체크는 진단이 아니라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한지” 보는 신호등 역할이라는 점만 기억해주세요.

특히 10번 문항(자해 또는 자살 사고)에서 1점이라도 나오시면, 다른 문항 점수와 상관없이 즉시 도움을 받으셔야 해요. 잠깐 스친 생각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으시는 게 가장 안전해요.

산전 우울증이 산모와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

치료받지 않은 산전 우울증은 산모 자신뿐 아니라 태아의 성장과 분만 경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이 부분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부모님을 놀라게 하려는 게 아니라, “치료받는 것이 아기를 위해서도 더 안전하다”는 점을 분명히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영역보고된 영향
산모 신체식욕·수면 저하로 영양 부족, 면역력 저하, 임신 합병증 위험 증가
산모 정신산후 우울증 진행 위험 50% 이상, 산후 정신증·자살 위험 증가
태아 발달자궁 내 성장 지연, 저체중 출산 위험 증가
분만조산(37주 미만 출산) 위험 약 1.4–2배 증가
출산 후모유 수유 어려움, 애착 형성 지연, 영아 행동 문제 위험 증가

이 영향들은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에서 관찰된 결과예요. 적절한 치료를 받으시면 이런 위험들은 분명히 줄어든다는 연구가 일관되게 나오고 있어요. 즉 부모님께서 진료를 받으시는 것 자체가 아기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뜻이에요.

“약을 먹는 게 아기에게 위험할까 봐” 두려워하시는 마음은 너무 자연스럽지만,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이 미치는 영향이 약물의 잠재적 위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점을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어요. 결정은 혼자 하시는 게 아니라 협진을 통해 함께 하시는 거예요.

치료 옵션 — 심리치료와 약물

산전 우울증의 치료는 크게 심리치료(비약물)와 약물치료로 나눠지고, 증상의 심각도와 부모님의 선호에 따라 선택하시거나 함께 적용해요. 어느 쪽도 부모님 의지로 혼자 결정하시는 게 아니라, 전문가와 함께 가장 알맞은 길을 의논하시는 거예요.

치료 옵션적용 대상특징
인지행동치료(CBT)경도–중등도 우울증 1차 선택부정적 생각 패턴을 다루는 구조화된 단기 치료, 8–16주
대인관계치료(IPT)관계·역할 변화로 인한 우울에 효과임신·부모됨의 역할 전환 다루기, 8–16주
지지적 정신치료모든 단계안전한 공간에서 감정을 풀어내는 치료, 비구조화
운동·생활습관 개입경도 우울 보조임산부 요가·걷기·일광 노출, 단독으로는 한계
SSRI 항우울제중등도 이상 또는 심리치료 무반응임신 중 비교적 안전한 옵션 존재, 협진 필요
입원 치료자해·자살 위험, 정신증 동반산모·아기 안전 우선, 단기 입원 후 외래 연결

경도–중등도 우울증에서는 심리치료가 1차 선택이에요. 한국에서는 산모·태아 정신건강 클리닉이 있는 대학병원이나 일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임신부 대상 CBT·IPT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직장 다니시는 분이라면 비대면·온라인 인지행동치료 옵션도 점차 늘어나고 있으니 주치의와 의논해보세요.

심리치료만으로 충분하지 않거나 증상이 중등도 이상이라면 약물 치료를 함께 고려해요. 약물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산부인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협진이에요. 한쪽 의견만 듣고 결정하지 마시고, 두 진료과가 함께 위험과 이익을 검토한 후에 결정하시는 게 안전해요.

자해·자살 사고가 있거나 정신증(현실 검증력 손상) 증상이 동반된다면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어요. 입원이라고 하시면 놀라실 수 있지만, 위기 시기를 안전하게 지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보통 단기 입원 후 외래 진료로 이어가는 형태예요. 산모와 아기 모두를 지키는 길로 봐주세요.

임신 중 비교적 안전한 항우울제

임신 중 항우울제 사용에 대한 연구가 지난 20년간 활발히 진행되면서, 어떤 약물이 비교적 안전한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정리되고 있어요. 다음 정보는 일반적인 참고일 뿐, 실제 처방은 반드시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을 통해서만 받으셔야 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약물안전성 등급주의점
세르트랄린 (Sertraline)임신 중 SSRI 중 가장 권장모유 수유 시에도 비교적 안전, 1차 선택
시탈로프람 (Citalopram)비교적 안전고용량은 심장 기형 위험 보고, 저용량 권장
에스시탈로프람 (Escitalopram)비교적 안전시탈로프람과 유사, 1차 대안
플루옥세틴 (Fluoxetine)사용 가능반감기 길어 모유 수유 시 주의, 신생아 적응 증후군 가능
파록세틴 (Paroxetine)1분기 회피심장 기형 위험 보고, 임신 초기는 다른 약 우선
부프로피온 (Bupropion)케이스별금연 보조 효과, 우울증·산모 흡연 동반 시 고려
벤조디아제핀가능한 회피신생아 금단·진정 위험, 단기 사용도 신중

대한정신약물학회와 ACOG(미국산부인과학회) 가이드라인은 임신 중 우울증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 SSRI 중에서 세르트랄린을 1차 선택으로 권하고 있어요. 안전성 데이터가 가장 많이 쌓여 있고, 모유 수유 시에도 비교적 안전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요.

이미 임신 전부터 다른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계셨다면, 임의로 끊지 마시고 반드시 진료를 통해 조정하셔야 해요. 갑작스러운 중단은 금단 증상과 우울증 재발 위험을 함께 가져올 수 있어요. 임신을 확인하신 즉시 정신건강의학과 주치의와 상의하셔서 약물 조정 계획을 세워주세요.

진료를 받으셔야 하는 신호 — 체크리스트

다음 항목 중 하나라도 해당되시면, “이 정도로 진료받아도 되나” 망설이지 마시고 진료를 예약하시거나 1577-0199로 상담받으세요. 도움받는 데에는 충분한 자격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진료가 필요한 신호:

  • 2주 이상 우울 기분, 무망감, 공허함이 지속됨
  • 평소 좋아하던 일에서 즐거움이 사라짐
  • 일상 기능(출근·식사·자기 돌봄·관계)에 분명한 지장
  • 아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자주 떠오름
  • “내가 엄마가 될 자격이 없다”는 자책이 반복됨
  • 잠을 자도 회복되지 않는 깊은 피로
  • 식욕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폭식으로 위안받음
  • EPDS 자가 체크 9점 이상

즉시 도움을 요청하셔야 하는 응급 신호:

  • 자해 또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 잠깐이라도 떠오름 → 1577-0199 또는 1393
  • 아기를 해치는 상상이 떠오름 → 즉시 정신건강의학과 응급 진료
  • 환각·망상·현실감 상실(주변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짐) → 응급실 119
  • 식사·수분 섭취가 완전히 불가능 → 응급실 119

응급 신호가 보이실 때는 “조금 더 두고 보자”가 가장 위험한 선택이에요. 망설이지 마시고 바로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위기 상담 전화 1577-0199는 24시간 운영되고,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도 24시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어요. 응급 상황에서는 119도 정신건강 응급 평가를 도와드려요.

한국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자원

산전 우울증 치료를 위한 한국 자원이 생각보다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실 때는 다음 순서로 접근해보시면 좋아요.

자원연락처·접근 방법어떤 도움
정신건강 위기 상담 전화1577-0199 (24시간 무료)위기 상담, 자해 사고 응급 대응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24시간 무료)자살 사고 전문 상담, 위기 개입
보건복지콜센터129 (24시간 무료)정신건강복지센터 안내, 임신·출산 자원 연결
정신건강복지센터지역별, 무료상담·치료 연계·산전 우울 스크리닝
산모·태아 정신건강 클리닉대학병원 일부협진 약물 관리, 임신 특화 심리치료
산부인과 정기 검진다니시는 병원EPDS 검사, 정신건강의학과 의뢰
임신·출산 진료비 지원국민행복카드 100만원정신건강 진료도 일부 사용 가능

가장 접근하기 쉬운 시작점은 다니시는 산부인과 정기 검진이에요. 검진 때 의사 선생님께 “요즘 기분이 많이 가라앉아요” 한 문장만 말씀하셔도 EPDS 검사나 정신건강의학과 의뢰로 연결돼요. 산부인과 일부에서는 이미 산전 우울 스크리닝을 정기 검진의 일부로 시행하고 있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시기 어렵다면 검진 항목을 확인해보시는 것도 좋아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거주지 보건소를 통해 연결되고, 상담·치료 연계가 무료로 제공돼요. 익명 상담도 가능하고, 특히 직장이나 가족에게 알리기 부담스러우실 때 첫 시작점으로 좋은 자원이에요.

가족과 파트너가 함께 도울 수 있는 일

산전 우울증은 부모님 혼자 짊어지실 짐이 아니에요. 가까이서 함께 지내시는 파트너·부모님·가족이 어떻게 곁에 계시는지가 회복에 큰 영향을 줘요. 가족 분들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일을 정리해드릴게요.

가족·파트너 지원 체크리스트:

  • 듣기 — 판단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들어주세요
  • “임신했으니 행복해야지” 같은 말 삼가기 — 죄책감을 더 깊게 만들어요
  • 진료 동행 —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진료에 함께 가주세요
  • 약속 같이 챙기기 — 진료 일정·약 복용 시간 함께 기억해주세요
  • 가사·일상 부담 덜기 — 임신부가 쉴 시간을 확보해드리세요
  • 위기 신호 알아두기 — 자해 사고 언급, 평소와 다른 무기력은 즉시 도움 요청
  • 본인 돌봄도 잊지 않기 — 돌보는 분도 지치실 수 있어요

특히 “임신은 가장 행복한 시간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가 산전 우울증을 더 외롭게 만들어요. 그 말을 의도 없이 건네셨더라도, 우울증을 겪고 계신 분에게는 “내가 잘못된 거구나” 하는 자책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대신 “지금 많이 힘드시지요. 같이 있을게요”라는 말이 훨씬 큰 위로가 돼요.

진료 동행은 단순한 함께 있어주기를 넘어 실용적 도움이 돼요. 임신부 분이 의사 선생님께 증상을 잘 전달하기 어려울 때, 가족이 평소 관찰한 모습을 함께 말씀드리면 진단·치료 계획이 더 정확해져요. 또 약물 치료를 결정할 때 함께 설명을 들으시면 두 분이 같은 정보로 안심하시고 결정하실 수 있어요.

흔한 오해 풀어드리기

마지막으로, 산전 우울증을 둘러싼 흔한 오해를 차분히 풀어드릴게요. 이 오해들이 도움 받으시는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에요.

오해 1: “임신은 행복해야 하는 시간 아닌가요?”

사회와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일 뿐이에요. 임신 중에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후회의 감정이 드는 건 매우 흔한 일이고, 그것이 모성 부족을 의미하지 않아요. 호르몬·신체 변화·삶의 전환이 한꺼번에 오는 시기라서 오히려 정신건강이 흔들리기 쉬운 시기예요.

오해 2: “약은 무조건 위험해요. 참아야 해요.”

치료받지 않은 중등도 이상 우울증이 산모와 아기에게 미치는 영향이, 비교적 안전한 약물의 잠재적 위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게 학회의 일관된 입장이에요. 약물 결정은 산부인과·정신건강의학과 협진으로 신중하게 이뤄지고, 안전성 데이터가 충분한 옵션이 마련돼 있어요.

오해 3: “출산하면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예요.”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이 높아요. 임신 중 우울증이 있으면 산후 우울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50% 이상이라는 보고가 있어요. 출산 후 호르몬 급변과 수면 박탈이 더해지면 증상이 더 깊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임신 중 미리 치료하는 게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이에요.

오해 4: “정신과 진료 기록이 남으면 불이익이 있을까 봐 두려워요.”

정신과 진료 기록은 의료법상 엄격하게 보호받고, 본인 동의 없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요. 보험 가입 시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향이 줄어들고, 무엇보다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이 가져올 결과가 훨씬 큰 손실이에요. 정확한 정보는 진료받으시는 병원에서 안내받으실 수 있어요.

오해 5: “내가 약해서 우울증이 온 거예요.”

산전 우울증은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뇌 화학·환경 스트레스가 함께 작용하는 의학적 상태예요. 당뇨가 의지 부족으로 생기지 않듯이, 우울증도 마찬가지예요.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이 약함이 아니라 가장 큰 용기예요.

러베의 한마디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부모님 마음에는 기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이 같이 올라와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가라앉을 때, “나만 이상한가” 하는 외로움이 가장 깊은 짐이 돼요. 산전 우울증을 겪고 계신다면 부모님은 절대 혼자가 아니세요. 10명 중 1–2명의 임신부가 같은 경험을 하시고, 그분들이 도움을 받아서 회복의 길로 나아가셨어요. 약을 드시든 심리치료를 받으시든 가족의 손을 빌리시든, 어떤 형태의 도움이든 받으시는 게 부모님 자신과 아기 모두를 위한 가장 사랑스러운 선택이에요. 잠깐이라도 자해 생각이 떠오르신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1577-0199로 연락해주세요. 24시간 누군가 곁에서 들어드릴 거예요. 부모님이 회복되시는 길에 저희도 조용히 함께 있을게요.

References

  1. American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ecologists (ACOG). Committee Opinion No. 757: Screening for Perinatal Depression. Obstet Gynecol 2018;132(5):e208–e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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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국형 우울장애 약물치료 지침서 — 임신·수유부 우울증 챕터. 2021.
  4. 대한산부인과학회. 산전 진료 표준 가이드라인 — 정신건강 스크리닝. 2022.
  5.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ition (DSM-5). 2013.
  6. Cox JL, Holden JM, Sagovsky R. Detection of postnatal depression. Development of the 10-item Edinburgh Postnatal Depression Scale. Br J Psychiatry 1987;150:782–786. (한국어 타당화: Kim YK 등,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 2008;47(1):36–44.)
  7. 보건복지부·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 위기 상담 전화 안내(1577-0199) 및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운영 지침. 2024.

산전 우울증은 임신 중 정신건강 전반의 한 부분이라서, 불안·수면 문제와 함께 살펴보시면 도움이 돼요. 임신부의 정신건강을 폭넓게 다룬 임신·출산 전후 정신건강 가이드에서 큰 그림을 확인하시고, 출산 후로 이어지는 부분은 산후 우울증 가이드산후 불안 가이드에서 함께 봐주세요. 출산 후 며칠 동안의 일시적인 감정 변화인 산후 우울감(흔히 베이비 블루스라고도 하는 상태)이 궁금하시다면 산후 우울감 가이드도 도움이 돼요. 분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우울감과 함께 깊어지시는 경우에는 분만 공포증 가이드를, 잠을 이루지 못해 우울이 깊어지는 분은 임신 중 불면증 가이드를 살펴보시면 회복의 실마리를 찾으실 수 있어요.